드디어 오후 5시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얼른 카메라를 같은 앵글로 맞췄다.

난 사진을 전혀 모르지만, 같은 앵글로 세 가지 다른 조건에서 사진을 찍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게 이루어진 것이다.

아래 사진은 같은 곳에서  찍은, 비가 내리는 합천호 한 끝자락의 풍경이다.

먼 데 산자락이 흐리게, 아주 흐리게만 보인다.

너무 멋있다 !!!

사실 난 21일(금요일) 오후 합천으로 오는 길에 오늘은 비가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늦은 시간 황매산에 가면서도 그런 기우제를 마음 속으로는 지내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내가 그렇게 되길 바랐기 때문에 비가 온 것은  아니었다.

인디언들이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온다고 한다.

인디언들의 기도가 통해서라기 보다는, 그들은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올때까지 기우제를

그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비오는 날 제일 하기 좋은 일은 무얼까?

당연히 데이트가 아닐까?

그건 나이가 몇이든, 어떤 환경에 있든 누구와 데이트를 하든 좋은 게 아닐까?

ㅎㅎㅎㅎㅎ.....시실은 나도 "비오면 데이트하자"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런 말을 자주 듣기도 한다.

이 나이에 데이트라니....ㅋㅋㅋㅋㅋ

비, 합천호, 2일간의 가출, 잠적, 밤, 작은 모텔 203호, 데이트....

ㅋㅋㅋㅋㅋ.....무슨 부적절한 관계 사이에서 벌어지는 염문과 애정행각의 설정?

낮에 잠시 모텔 문 밖을 나서는데 입구 한켠에 하얀 찔래꽃이 피어 있었다.

난 배가 고파  찔래꽃을 먹어본 적은 없지만, 아카시아 꽃은 엄청나게 먹어 본 추억이 있다.

처음엔 배가 고파 허덕대며 그 하얀 꽃 무더기를 입에 넣지만, 제법 많이 먹고 나면

향기도 독하고 어지러워 비틀대기도 한다.

아주 오래 전, 한번은 토마토 밭에 들어가 주인 몰래 익지도 않은 파란 토마토를

배가 터지게 먹었던 생각이 난다.

그런 후에는 마치 술에 취한듯 비틀대곤 하던...그 당시 난 아카시아와 토마토에

많은 알콜이 들어 있는 줄 알았었다.

이연실의 노래 찔래꽃..."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래꽃...찔래꽃 하얀 잎은 맛도 조옿지...

배고픈 날 가만히 따먹었다오...엄마 엄마 부르며 따먹었다오..."

난 이 노래만 들으면 배가 고파 찔래꽃을 따먹는 어린 소녀와 나이 60이 채 되기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나곤 한다.
 
 
 
  아래 사진은 그 찔래꽃 나무다.
이 사진은 5월 21일 오후 6시경, 잠시 해가났을 때 찍은 사진이다.
 나는 주변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 얼른  꽃잎을 따 먹어보았다.
아주 약간 단맛이 있기는 했으나 떫기만 한 그 찔래꽃...그걸 엄마 엄마 부르며 따먹었을 어린 소녀...

나는 지금 세상의 모든 배고픈 사람들에 대해 무한한 존경을 표하고 싶다.
그리고 그 존경의 대상에 '애정결핍증'에 고통받는 사람들도 포함하고 싶다.

 
 
 
 
 
 
 
 
 
 
 
 
 
 
 
 
 
 
 
 
 
 
 
 
 
 
 
 
 

... 나는 5월 21일, 오후 4시경 이곳에 왔다.

내가 이곳에 와서 아주 작고 조용한 모텔에 2~3일 묵기로 한 것은 휴식을 위한 것이거나,

낭만을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는 지금 8개의, 아주 긴박한 특허서류를 완성해야 한다.

늘 그렇지만, 특허서류를 작성하는 일은 그리 쉽지가 않다.

그런데 그런 특허서류, 이치의 설명, 간단한 도면 작성 등이 이번에도  그리 쉽게 써지지가 않는 거였다.

사무실에서는 다른 일이 섞여 엉망이었고, 집에서는 그저 티비만 켜놓고 있게 되기를 벌써 며칠째,

이제 나는 시간에 쫒기는 절박한 신세가 됐다.

그럴수록 더 큰 스트레스가 덮쳐 오고...

그러니까 이곳은 내가 좀 조용한 시간을 가지고 업무를 보기 위한 도피처일 뿐이고, 나는

이곳에 와서, 죽는 한이 있어도  돌아가기 전 까지는 좀 더 정리된 특허 신청 서류들을 만들어 내야 한다.

 내가 정리해야 할 8개의 특허 출원 명칭은 대개 이런 것들이다.

1, 식물 재배를 위한 ........재.....................터.

2,.......LED의....에 따..........................방식.

3, 간편한.....................기.

4, 성장의 변화에........................최적의 장치.

5, 빛 Spectrum 에 다른 .......................

6, 간편한......그...치...정..........치.

7, 2....식....사용한.....효율적....제............

8, ......Resistor.................에너지.......방법.

 그리고 내가 요즈음 연구 개발하고 있는 쪽, LED 를 이용한(또는 LED가 아니더라도) 식물의 촉성재배 방법에 관해 아주 혁신적인, 진짜로 연구하고 싶은 과제들이 몇 개 더 있다.

그 실험, 관찰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아이디어도 여기서 얻게 됐으면 한다.

 ....22일 낮, 죽도록 일에 매달렸다.

어제 밤, 밤을 꼬박 새우면서도 그저 멍하니 있었을 뿐,

아무 일도 못했다는 죄책감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다행히 몇 개의 안에 초안이 마련됐다.

글이란 초안이 마련되고 방향이 잡히면 다음부턴 쉽게 풀려 나가기 마련이니까.

밖에서는 계속 비가 오고 있었다....

                                      오후 늦게부터 빗줄기가 차츰 굵어지기 시작했다.
 
                  10시....창문을 여니 빗소리가 요란했다.
                                 11시...빗소리에, 빗내음에, 비의 허연 영상이 어두운 창 밖에서 춤추고 있었다.
             12시 ...드디어 빗소리가 우당탕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바람소리같은 비의 외침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뿌연 물보라가 손짓했다.

나는  밖으로 나갔다. 그냥 방 안에 앉아 있다간 폭발해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5월 23일 아침(밤) 0시 30 분....나는 차를 몰고 합천호 쪽으로 향했다.
합천호 관광안내소를 거쳐 합천댐 발전소, 보조댐 안내소까지 아무도 없었다.
그냥 어둠과 비와 가로등과 파도소리처럼 이어지는 빗소리뿐....

나는 몽유병자가 푸닥거리를 하듯  시커먼 합천호를 내려다 보며 더 많은 비가 내리길  빌었다.
2010년 5월 22일 현재, 저수율 28.5%라는  이 호수에 물이 가득차길 바라면서...
....비가 뼈 속까지 젖어오는 기분이 짜릿했다.
 
돌아오는 길에  합천읍에 들러, 마침 문을 닫으려는 어느 마트에서 6.200 원을 주고 청포도 한 봉지를 샀다.
그게 그날 밤의 내 식량이었다. 청포도가 비와 아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당연히 나는 그날 밤도 잠을 못자고 헤맸다.
비때문이었다.
 


이 일이 있은 3일 후인 5월 26일,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고
27일엔 다시 병원에 가서 링거를 맞고 왔다.
그리고는 드디어 28일, 병원에 입원했다가 30일 퇴원했다.
병명이 급성 편도선염이라고 했다.
ㅎㅎㅎ...어린애나 걸리는 병으로 입원까지 하다니...

그 후유증으로 아래 윗입술이 터져 엉망이 됐고 내가 보기에도 민망할 지경이
한동안 계속됐다.
이건 또 허피즈(헤르페스)라는, 일종의 성병으로 몸이 피곤하거나 컨디션이 안 좋을때
나타난다고 한다.

참...별 별 짓을 다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나는 이 일로 해서 비오는 날 밤의 몽유병 환자같은
푸닥거리를 벌이는 행위는  건강에 매우 해롭다는 걸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