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바스

쥐코 밥상

강재일 2010-12-02 (목) 21:06 추천:0 조회:790 59.xxx.96

밥 한 그릇에 반찬 두어가지 놓고 간단하게 차린 밥상을 '쥐코 밥상'이라 한다.
내가 사계에 들면서 작정한 것이 바로 이 '쥐코 밥상'메뉴다.
기름기 많은 느끼한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나에겐 오히려 이 쥐코밥상이 제격임에.

일식 삼찬(一食三饌)도 진수성찬이라는 말을 듣던 적이 있었다.
한끼 밥에 세가지의 반찬도 사치라는 뜻이다.
물론 군에서였다.
나의 군 생활은 남달리 호사로웠지만 그래도 군대는 군대였기에.

며칠 전, 계절답지 않게 매섭게 춥던 날.
제자가 생선을 시꺼먼 봉지에 한 가득 가져왔다.
팔뚝보다 굵은 노래미가 두마리, 도다리와 우럭 등.
의아해 하는 나를 보고 묻지도 않은 말을 한다.
시장 안, 좌판도 없이 생선을 팔고 있는 어느 할머니가 너무 안스러워 팔아 줬다는 거였다.
매일 매일 찬거리도 장만 않고 그렇게 지내다가 영양실조 걸릴거라며 걱정이 태산이더니.
아침에 물을 봐, 싱싱한 자연산이라는 생선의 상태가 그다지 좋잖아 보인다.
아무래도 그런 감정(監定)엔 내가 제자보다 한 수 위다.
그렇다고 막말을 할 수가 없어 그냥 냉동실에 보관을 하라고 시켰다.

화요일.
시조창 수업을 마치고 얼려 뒀던 생선을 꺼내 손질을 하였다.
등쪽을 쪼개 세미 드레싱을 한 것이다.
그리고는 테라스 한 쪽 기둥에 옻걸이를 이용하여 조심스레 걸어 두었다.
자칫하면 뒤켠 대숲에 무리를 지어 기거하는 고양이의 침입을 당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하루가 지났다.
제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햇볕을 피해 생선을 그늘쪽으로 옮겨 놓으라는.
그런데 아뿔싸.
생선을 보는 순간 난 기겁을 하고 말았다.
파리가 얼마나 들어 붙었는지 생선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것도 손가락 마디만큼 씩한 커다란 왕파리들이.
세상에, 어디서 그런 파리들이 그렇게나 몰려 들었을까?

결국 그 생선은 눈요기만 하고 버릴 수 밖에 없었다.
그때 언뜻 달이가 생각 났다.
요즘 들어 가뜩이나 우울증세를 보이는 달이.
그 달이에겐 둘도 없는 특별식이리라.
마침 진주에 다녀 오는 길에 제자가 그 생선으로 요리를 했다.
당연히 달이를 주기 위한.
커다란 솥에 적당히 물을 넣고 쪄 내니, 거들하게 수분이 빠져버린 생선살이 먹음직스럽게 익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산책을 다녀와서 여느 날처럼 내 밥상을 차리기 전에 달이 먹이부터 챙겼다.
어제 저녁에 쪄 놓은 생선으로.
모처럼 달이가 신이 났다.
바지 가랑이에 코를 비벼대며 발까지 동동 구른다.
얼른 비키라는 뜻이다.
서너 마리를 그릇에 담아 주고, 나머지는 그대로 남겨 두었다.
한꺼번에 주면 단참에 다 먹어 버릴 기세였기에.
정말 맛있게도 먹는다.
축 내렸던 꼬리까지 살랑살랑 흔들어 대면서.
그렇게 먹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다 내 밥상을 차렸다.

쥐코밥상.
언제나 내 밥상은 담백하다.
생선은 물론이요, 기름기 많은 음식이 없다.
가끔 제자가 차려 주는 성찬 외에는.
그나마 어제 저녁에 먹다 남긴 된장국이 무척이나 개운하다.

언제 적인가.
후배가 운영하는 식육식당에서 덩치 큰 수탉이 암탉을 거느리고 그 화려한 깃털을 뽐내며 위용을 자랑하듯, 장삼위에 걸친 가사자락을 펄럭이며 뒤 따르는 여 신도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은 채 성큼성큼 내실로 들어가든 어느 중이 생각난다.
개고기 수육을 가득 담은 커다란 접시를 들고 가든 후배의 일갈(一喝).
"이 고길 먹고 뒷일을 우찌 감당 할란고?"

그렇다.
특히나 수행하는 자에게서의 산해진미란 마구니에 불과하다.
지나친 영양분을 어디엔가는 소진 해 줘야 하니까.
오히려 담백한 식사후의 차 한 잔.
정신을 맑히는 일에 이 외에 더 무엇이 필요하랴.

Heung-sook,Lee 2010-12-06 19:48	안빈낙도 글이 생각납니다. 건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