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이로 태어나 한 생을 살려면 적어도 이 4가지는 염두에 둬야 하리라.
유식한 언어로 신(身), 언(言), 서(書), 판(判).
다소 무식하게 풀자면,
신(身) : '허우대는?',
언(言) : '세치 혀의 조리는?',
서(書) : '문장 솜씨는?',
판(判) : '판단력은?'
 
그 중에서도 특히 '판(判)'의 중요성은 지극한 것이다.
앞의 셋을 모두 아울러도 못 당할만큼.
그러니까 이목구비가 제 아무리 민주주의로 생겼다 치더라도,
말머리가 무식해서 횡설수설 뇌까릴지라도,
글 한 줄 끄적거릴 줄 몰라서 천당과 지옥을 분별 못 할지라도,
[판단의 예지력] 만큼은 필히 갖추어야 할 덕목 중의 덕목이란 의미다.
판단에 능한 사나이.
이 사나이야말로 걸출한,
진짜 사나이 중의 사나이란 말이다.
 
판단.
전후 사정을 종합하여,
사물에 대한 자기 생각을 마음 속으로 정하는 것.
 
이런 판단에 제일 우선시 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이성(理性)'이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쓰는 이 이성이란 낱말의 뜻은 참으로 묘하기 짝이 없다.
불어나 영어의 어원은 '계산'과 '비례'를 뜻하는 라틴어, [라티오ratio]다.
이 라틴어는 '일관성 있는 논리적 담론 또는 그 담론에 담긴 진리'를 뜻하는
그리스 어(語), 로고스(logos)의 번역이고.
 
암튼 이성이란 말은 원래 서양적 개념으로서 서양적 전통에서 철학의 주체인 동시에
철학적 활동이며 철학적 사유의 기본대상일 뿐 아니라,
모든 서양적 담론과 사상의 본질이다.
그래서 이성이라는 개념만 제대로 이해해도 서양의 담론과 사상을 어느 정도 접근했다고 하는 것이다.
그만큼 그것들을 이해하는 데 제일 큰 열쇠 역할을 하는 게 바로 이 이성이다.
 
사람들은 이성에 대한 풀이를 '합리성'과 유사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는 착오다.
이성의 문제와 합리성의 문제는 결코 같을 수가 없다.
합리성의 개념은 이성의 개념으로 설명 할 수 있으나,
이성은 합리성의 개념으로는 이해 할 수 없는 까닭이다.
세상엔 병치는 될 수 있으나 순치는 불가능한 것들이 더러 있다.
이성과 합리성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합리성'의 일차적 의미는 이미 그 존재가 전제 된 '이성에 맞는' 이거나 또는,
'이성에 의해 도출 된' 존재 혹은 신념의 속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논리적으로 '이성'의 개념이 '합리성'의 개념보다 선행한다는 뜻이다.
합리성은 어디까지나 이성의 존재를 전제한다.
하지만 이성은 합리성을 전제하지 않는다.
무슨 말인고 하니,
이성이 존재론적 개념이면, 합리성은 논리적 개념이란 거다.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립 산타크루즈대학의 [그레그 레플린] 박사가 지구의 가격을 밝혀 화제가 되고 있다.
참으로 대단한 양반이다.
회갑년이 되도록 전화번호 하나 제대로 변변히 외우지 못하는 나같은 사람이 있는 반면,
우주에 산재한 행성들의 값어치를 현찰로 환산해 낸 그런 천재 학자도 있다니.................
 
그 숫자만 봐도 눈이 헷갈린다.
만원짜리 지폐 한장으로 라면 한봉지를 사면 얼마의 거스럼 돈을 받아야 할지도 모르는 주제에
이 어마어마한 숫자를 어이 읽으랴.
5,447,460,000,000,000,000 원
544경 7460조원.
 
내 지갑을 펴 봤다.
도대체 '경'이나 '조'라는 단위가 우리의 화폐를 세는 단위로 쓰인다는 게 경이롭기만 하다.
 
존재를 감각적(sensible) 나타남(appearance)과 가시적(intelligible) 실재(reality)로
구분한 사람이 있었다.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제자이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이기도 했던 그는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물체를
하나의 고정된 '관념(idea)'과 '형상(form)'으로 파악하고,
이데아는 형상의 단순한 복사에 지나지 않는다고 설파 했다.
 
너와 나, 그리고 원언당의 달이와 오늘 거제 가조도의 어느 집으로 가 버린 똘이,
벽방산 등산로를 메우고 있는 길섶의 풀과 나무들.
오늘도 지구의 기(氣)를 찾아 손바닥을 움직이고 계실 홍박사님과 주변 분들.
늘봄 공원가든 입구의 오죽(烏竹)과 선생님 댁 담장의 하늘수박 등 등.
그것들은 모두 그것들의 '이데아'로 존재 할 뿐이지 '구체적 그것들'은 없다는 거다. 
그러니까 영원불변하게 고정된 이데아만이 진리의 근원이며 앎을 보장하는 형이상학적 존재근거일 뿐이고,
이성이란 다름아닌 형이상학적 존재근거로서의 '이데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결론이다.
 
물론 훗날, 이 주장을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감각적 세계와 가시적 세계의 구별부터 거부해 버리지만.
그러나,
그의 주장에도 가변적인 모든 사물의 밑바탕에는 원래 고정되어 있는 본질이 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다.
뿐만 아니라,
'진리'를 그러한 '본질'로 파악한다는 자체가 이미 플라톤의 주장과 거기서 거기가 되고 말지 않은가.
 
'본질'은 어디까지나 앎의 목적이며 진리의 궁극적 근거다.
칸트 역시 그랬잖은가.
'이성'이야말로 인간의 속성만이 아니라, 존재의 속성으로 파악해야 할 것이라고.
 
아마 철학사를 통 해 형이상학적 실체를 가장 극명하게 정의한 사람이 데카르트일 게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
이 말은 불교인들이 흔히 인용하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적 입장과 똑 같다.
즉, 이 우주가 본디부터 있었기 때문에 주관적 인간이 인식 할 수 있었던 게 아니라,
인간의 인식 능력이 주체적으로 만물을 인식하게 됨으로서 있게 되었다는 말이니까. 
 
육조단경에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두 명의 선승(禪僧)이 선문답을 하는데,
한 명이 "깃대 위의 깃발이 움직이는 구려"라고 하니까,
"깃발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다만 바람이 움직일 뿐입니다."하고 되 받는다.
옆에 있던 중 하나가,
"깃발도 바람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오직 그대들의 마음만이 움직이고 있을 따름입니다."

가섭존자에게 물으면 뭐라 할까?
아마 염화시중의 미소로 빙그레 웃으시겠지.
말 따위는 거추장 스러우니까.
이 선문답이 계기가 되어 홍인대사(5祖)에게 픽업.
라이벌이었던 신수(남종선의 창시자)를 따돌리고 선문의 6조(祖)가 된 혜능.
 
과연 이 세상의 모든 생장소멸은 모두 합리주의와 경험주의에 의한 마음의 움직임에 불과한 걸까.
그렇다면 우리는 청대(淸代)의 '왕부지(王夫之)'를 기억해야 하리라.
천지의 기화(氣化)가 날로 새로워 천명이 시간의 추이에 따라 새롭게 바뀐다는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의 [기화일신론(氣化日新論)]과 [성명일생론(性命日生論)]을.
하늘은 날마다 인간에게 명(命)을 내리고,
인간은 날마다 하늘에서 명(命)을 받는다.
 
오늘은 비가 내렸다.
가뭄을 해소시킬 반가운 비가.
그런데 오늘의 비는 슬픔이고 눈물이었다.
똘이를 보내 놓고 한없이 마음 아린 하루였었다.
사람들은 내게 일렀다.
개는 개답게 키우면 된다고.
그런데 개를 개답게 키우는 게 어떤 건지 그걸 모르겠다.
나에게서의 개란 존재는 가족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합리적?
이성적?
글쎄....................................
 
사람의 생각들이 별나서 그런지 참 별난 세상처럼 느껴진다.
'이성'과 '합리성'에서 오늘처럼 헷갈린 적이 없었다.
 
내가 별난 걸까????????????
모든 게 마음먹기 달렸다고 했으니.
 
                                                  2011년  2월   끝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