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설명: 이 사진은 지난 7월 8일, 구미 구평동 소재 아파트를 지을 예정인 빈터에서 오후 8시경에 찍은 것이다. 나는 이 사진을 찍기 위해 일주일 전 부터 해가 지면 주변을 배회했었다.)
 
내가 처음 달맞이꽃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 된 일이 아니다.
그때 난 한 아가씨를 알게 됐었는데, 성격이 참 명랑하고 그늘이 없는 그런 아가씨였다.
그녀는  뜬금없이
 
"아저씨, 막창 먹고 싶어요. 막창 사 주세요."
 
라는 전화를 해 오곤 했었는데 그런 때면 우리는  국산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상례였다.
막창과 포도주가 어울린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고나 할까.
 
그렇게 막창과 포도주를 함께 마신 날이면 나는 그녀를 도심에서 한 15km 쯤 떨어진 그녀의 시골 집까지
태워줘야 했었다.
 
 그녀가 시골 집에 가고 싶은 때면 막창을 사달라고 했었는지, 아니면 술을 마셨으니 집에 가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늦은 밤 시골길을 여유롭게 다니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한번은  그날도  그녀를 시골 집에서 한 300m 떨어진 곳에 내려준 길섶에 노랗고 화사한 꽃이 피어 있기에 그녀에게 물었더니  어둠 속으로 뛰어 가면서 그녀가 대답했었다.
 
" 달맞이꽃이잖아요....조심해 가세요!"
 
그 억양엔 아직 달맞이꽃도 모르는 바보라는  놀림도 담겨 있는듯 했다.
 
화 !!!... 이게 바로 그 달맞이꽃이구나.....
그날부터 나는  달맞이꽃에 매료되어 여름 밤이면 여기 저기 밤길을 헤매게 됐다.
달맞이꽃이 내 몸 어느 구석엔가 잠들어 있었던 몽유병 기질을 깨운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인가 그녀는 속상하는 일이 있다며 포도주를 좀 과하게 마시더니
속이 좋지 않다며 끙끙대다가 차를 세워달라고 했었고, 그렇게 잠에 빠져 들었던 일이 있다.
 
 나는 그녀를 차에 남겨둔 채 밖으로 나와 멀거니 주변을 둘러 보았다.
휘영한 달빛 아래 멀리 시가지의 한 쪽 끝에 있는 무슨 은행 건물이 보였고 시골 쪽으로 향한 길 한  옆으로는 달맞이꽃이 피어 있었다.
 
나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때였다.

"아저씨 ! 여기서 담배를 피우면 어떻게 해요? 이 예쁜 꽃들 앞에서..."
 
나는 너무 놀라 주변을 둘러 보았다.
그리고는 곧 그게 달맞이꽃의 항변이라는 걸 알아챘었다.
 
"어어...미안...난 꽃들이 담배를 싫어하는 줄은 몰랐어....담배 끊을게..."
 
"어머, 보기보다 신사이시네...그건 그렇구 차 안에 아가씨 있잖아요. 차 안에서 잠들면 질식한다는데..."
 
"그래서 창문 네 개를 모두 조금씩 열어두었지...많이 열어두면 모기 들어올 것 같고..."
 
"그래도 더울 거잖아요."
 
"나도 그런 생각이 들어서...에어콘을 아주 약하게 틀어 두었어."
 
"하지만 불편할 텐데....앉아서 자면...."
 
"아니, 의자를 뒤로 제쳐서 눞여놨어. 침대처럼..."
 
"그러고는 밖에 나와서 담배를 피우시는 거예요? 아저씨 참 좋은 분 같네요...바보같이...흐흐흐..."
 
나는 그때 어떤 달맞이꽃이 그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유난히 흔들리는, 좀 질이 나쁠 것 같아 보이는  달맞이꽃이 그 가운데 하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그녀가 시집을 간다는 소식을 들었었고, 애를 둘이나 낳아 행복하게 산다는 얘기도 듣기는 했다.
그러다 그녀에 관한 소식을 가끔씩이나마 전해 주던 그녀의 맺은 동생이라던 아가씨 마저 시집을 간 후,
더는 그녀에 관한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녀에게서 전화나 연락이 오지 않는다는 건 그녀가 그만큼 행복하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나는 내게 달맞이꽃을 처음 가르쳐준 것만으로도 그녀에게 늘 감사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
밤의 또 다른 향연, 달맞이꽃들을 만나는 즐거움과 그들과 대화하는 방법을 배웠으니까.
그런데도 내가 바보일까?
 
마침 어제 밤, 나는 달맞이꽃 탐색에 나섰다가 고령군 어느 강변에서 아주 큰 달맞이꽃 군락지를 찾아냈다.
달맞이꽃은 그곳에서 둑을 따라 1km 가 넘게 이어지면서 그들만의 세상을 구축해 놓고 있었다.
 
"와...! 올 해엔 달맞이꽃을 한없이 보겠어...하지만 아직은 내가 너희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하지 않겠어... 아직은 쑥스러우니까...자주 찾아올게...."
 
그때 문득 나는 달맞이꽃 사이에서 이런 소리를 들은 것 같기도 하다.
 
"아저씨, 막창 사 주세요...."
 

달맞이꽃은 그 약효로도 우리에게 도움을 준다.
그러나 우리가 달맞이꽃을 채취할 때, 사실은 달맞이꽃이 자신을 잘라가도록 허락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르기 편하게 긴 꽃대를 준비해 두기까지 했다.
 
"몸이 허약하세요? 그럼 저를 짖눌러 기름을 짜서 드세요.
제 조그맣고 까만 씨앗에는 감마리놀렌산이 풍부하답니다.
그것도 부족하면 저를 더운 물에 데쳐 드세요.아니면 저를 햇볕 내려쬐는 곳에 널어 주세요.
제가 꾸덕꾸덕 마르면 병에 담아 발효시켜 드세요.당신의 온 몸 구섯구석에 퍼져 당신의 건강을 지켜 드릴게요.
저를 더운 물에 우려 차로 드셔도 돼요.제 향은 비록 미미하나 당신의 후각기관 가까이서 당신이 원하는 만큼의 여향으로 머물러 드릴게요."
 
어떤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한다.
 
"넌 왜 밤에 피는거니?"
 
자신은  경사진 강둑이나 길섶에서만  피어야 하고, 그래서  쫒겨난 모습으로만 보여 애처로운 꽃.
 
그렇다. 달맞이꽃은 외롭다.
그러나 그들이 있어 밤길을 헤매는 사람들은 위로를 받는다.
달맞이꽃의 꽃말이 "말없는 사랑" 이거나 "기다림"인 것에서도 그런 의미가 있듯이 달을 짝사랑하던 님프가
죽어 꽃이 됐다는 전설이 그렇다.
그래서 달맞이꽃의 네 잎은 사랑, 기다림, 고독을 의미하겠지만  그래도 나머지 하나는 희망을 의미하지 않을까?
 
가끔은 내게 처음 달맞이꽃을 가르쳐준 아가씨가 생각나게 해 주는 꽃, 달맞이꽃은 비록 외롭더라도 늘 그 아가씨와 같이 밝고 소박하고 어떤 때는 요염한 여인처럼 섹시하기도 하다.
 
  꽃을 아는 사람들은, 특히 달맞이꽃을 아는 사람들은  꽃을 채취할 때 꼭 전체의 70%쯤만을 채취하고 그 나머지는  남겨둔다고 한다.
그들과 다음 해에 다시 만나기 위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