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바스

하이브리드- 펀 글

Heung-sook,Lee 2011-08-14 (일) 08:57 추천:0 조회:742 125.xxx.111

루브르박물관 앞에서 프랑스 처녀들 시위! 드골공항에 몰려나온 한류팬 1500여명!

'한류'가 힘차게 불 때마다 떠오르는 단어는 엉뚱하게도 '소림사'와 '사무라이'다. 소림사와 사무라이는 중국과 일본 문화를 상징하는 국가대표다.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출산해냈고 두 나라의 문화 자궁 역할을 해왔다. 영화제목에 '소림사'와 '사무라이'만 붙여도 성공을 보장하던 시절이 있었다. 80년대 아시아 영화계를 군림했던 홍콩영화는 대개가 소림사와 쿵후가 그 바탕이었고 세계무대에서 이름을 떨친 일본영화도 사무라이와 연관된 작품들이 태반이었다.

하지만 새옹지마랄까 자궁이 함정으로 변했다. 동일한 자궁에서 생산된 수많은 유사제품은 '듣기 좋은 노래도 세 번이면 족하다'는 덫에 걸려 서서히 그 영광을 잃어갔다. 지역적 특수성은 있으되 세계적 보편성이 결여된 반복적인 자기복제와 유사복제가 빗어낸 결과였다. 한때 세계 구석구석 요란한 총성을 울렸던 할리우드산 서부영화의 몰락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의 대중문화엔 '자궁'으로 내세울 만한 게 없다. 애석하게도 소림사도 없고 사무라이도 없다. 하지만 그것도 새옹지마였다. 소림사와 사무라이가 그들의 자유로움을 방해한 것과는 반대로 자궁의 없음이 한국의 대중예술가들에게는 시공을 초월한 자유로움을 주었다. 우리 드라마를 유심히 관찰한 외국 전문가들은 말한다. "한국드라마는 잡종(하이브리드·hybrid)이다. 동양과 서양이 교묘하게 결합돼 있고 과거의 전통가치와 미래의 신가치가 절묘하게 혼합돼 있다. 한국드라마 속에서는 장유의 질서와 식구간의 위계, 형제애 같은 유교가치와 더불어 개인의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서구적 현대인의 멋진 표상을 발견한다.

유교의 종주국인 중국엔 '문화혁명'으로 인해 유교적 전통이 사라졌고 한 가정, 한 자녀가 의무화되면서 대가족 문화도 없어져 버렸다. 중국에서 '사랑이 뭐길래' '보고 또 보고' 같은 가족드라마가 인기 있는 이유는 우리의 가족 드라마들이 가지고 있는 동양적 가치 때문이다. 동아시아적인 감수성과 서정성이 증발된 일본드라마는 그 자리에 팩트 중심의 드라이한 스토리와 미스터리와 서스펜스가 가미된 암투와 갈등이 들어서며 중장년층을 한국 드라마에게 넘겨주었다.

한국 드라마에는 서구적 요소도 강하다. 인물들은 강렬하고 사건들은 스피디하게 전개된다. 배우들이 토하는 감정은 강하면서 직설적이다. 영상은 화려하면서도 다이내믹하다. 한국적 특징도 분명하다. 드라마 속 모든 사랑은 언제나 운명적이고 그 운명적 사랑조차도 삼각관계와 선악구조 속에 존재한다. 주인공은 사랑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기꺼이 버린다. 삶을 향한 치열함과 인생에서 마주치길 기원하는 꿈이 존재하며 출생의 비밀이 인생을 좌지우지하고 불치의 병이 사랑을 백척간두에 세워 시종여일 시청자에게 극적 긴장감을 제공한다. 한국 드라마의 특징을 굳이 명명한다면 '비빔밥 레시피'랄 수 있다.

잡종교배-하이브리드는 글로벌시대의 생존원리다. 요즘 최고 인기 있는 종합격투기, UFC와 F-1은 복싱과 레슬링, 가라테와 태권도, 주지스와 킥복싱 같은 전통 스포츠의 잡종이다. 일본 쓰나미 사태 때 망망대해에서 3주간을 버텨내 일본인에게 희망을 준 '게세누마의 기적의 개'도 잡종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한다. 금세기 최고의 체육인이라는 타이거 우즈도 마찬가지다. 그의 아버지는 흑인·백인·인디언의 혼혈이며 어머니는 중국인·말레이인의 혼혈이니 지구상 모든 인종의 하이브리드라 할 수 있다.
K팝을 중심으로 유럽에서 불기 시작한 신 한류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재능 있고 잘 훈련된 미모의 젊은이들과 유럽의 작곡가와 안무가들이 결합해 만들어 낸 작품이다.

물론 잡종예찬이 순종이나 토종의 배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순종과 토종이 존재하지 않는 곳엔 잡종도 존재할 수 없다. 하이브리드는 꼭 이 문화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정치·경제·과학·기술 모든 분야와 장르에 퓨전과 하이브리드, 잡종과 혼합이 필요할 것이다. 칸트가 말한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는 명제와 더불어 가장 세계적인 것이야말로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 파이낸셜뉴스 문화칼럼니스트 이응진 드라마PD

kookjongKIM 2011-08-16 11:21	좋은글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