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바스

베트남의 까페 쓰다(4)

김새로미 2006-08-24 (목) 00:36 조회:1361

8월2일
리조트에서의 마지막 날. 오늘은 조식 뷔페도 천천히 즐기고 12시까지 수영장과 바다를 뛰어다니며 또 신나게 놀았다. 체크아웃을 하려고 가방을 싸고 있는데 룸메이드가 오더니 뜬금없이 초콜릿을 주고 간다. 이런, 떠나려는 나를 붙잡는 이런 센스.
혹시나 프런트에 물어보니 역시나 방이 풀로 예약되어 있어 여유가 없단다. 체크아웃을 하고 해산물 요리를 먹으러 나짱 시내로 나갔다. 리조트를 떠나려니 아쉬움이 남는다.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추억은 가득 담아간다.

리셉션을 떠나 택시를 잡아타고 나짱 시내의 해산물 식당으로 향했다. 랍스터를 파는 노점이 있다고 들었는데 시간이 일러서인지 보이질 않는다. 기사가 소개해준 식당에 가서 자리를 잡았다. 신랑들이 근처를 둘러보고 오더니 가격은 대부분 비슷하다고 한다.
도대체 어느 정도가 적당한 양인지 알 수 없어서 랍스터 두 마리와 타이거 새우를 시켰더니 남자 어른 팔뚝만한 랍스터 두 마리와 타이거 새우 엄청, 스프링롤, 연어요리, 월남쌈, 코코넛에 삶은 새우, 샐러드, 마늘빵 등등이 다 딸려 나왔다. 네 명이서 랍스터 두마리도 다 먹기가 힘들었다. 결국 남은 음식은 싸달라고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양이 많을 줄은..
사실 가격도 10만원 정도라 엄청 비쌌다. 랍스터 한 마리만 시켰으면 배부르게 먹고도 4만원정도면 되었을 텐데 해산물에 눈이 어두워 이것저것 시키다 보니 생각지도 않은 과소비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해산물 대향락‘의 뜬금없는 결론은 ’그래도 한국 꽃게가 젤 맛있어‘ 였다. -_-...

4시 비행기를 타고 다시 호치민으로 왔다. 왠지 파라다이스에 있다가 현실로 돌아온 느낌이 들었다. 다시 호텔에 가방을 풀어놓고 내일의 메콩강 투어를 예약했다.
그리고 맨날 쌀국수를 먹었지만 이번에는 호치민 최고의 쌀국수를 먹으리라 결심하고 소개받은 쌀국수 집으로 향했다. 쌀국수보다 더 비싼 택시비를 내고도 가서 사먹는다는 집이니 정말 맛있겠지 생각했는데 정말 현지인들이 바글바글했다.
영어는 하나도 통하지 않고, 주인아줌마는 손님이 안그래도 많아죽겠는데 말도 안 통하는 얘들이 와서 귀찮아죽겠다는 듯이 우리에게 무슨 말인지 소리를 질러댄다. 우리는 아줌마 너무 무섭다면서도 상황이 재미있어서 헤헤 웃고 있었다. 답답한지 아줌마가 신랑들을 손짓으로 불러서 주방 쪽으로 갔더니 아예 메뉴도 안보여주고 다 만들어진 국수 중에 먹고 싶은 것을 고르라고 해서 두 종류를 찍었단다. 물론 말이 통한 것은 아니었고 분위기상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 어쨌든 그 국수는 정말 맛있었다. 한 그릇에 천 오백원정도면 그곳 물가로 엄청 비싼 것인데도 그렇게 사람이 많으니 맛은 정말 대단했다. 진한 국물에 담백한 면, 사각거리는 숙주나물의 촉감. 아줌마가 들고 있는 돈다발을 보니 이 집의 인기를 실감하겠다. 비록 아줌마는 무서웠지만 한국에 돌아와서도 신랑이랑 두고두고 이야기한 국수집이었다. 무서운 아줌마도 기억에 남는다. 아무래도 베트남판 욕쟁이 아줌마 국수집이 아닐까 싶다. 하하..

국수집을 나와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다시 호텔로 돌아갔다. 방에 가려고 하니 아무래도 아쉬워서 유명한 베트남 커피를 마시러 가기로 했다. 냉커피를 베트남 말로 ‘카페 쓰다’라고 한다고 한다. 여행자 거리의 까페에 앉아 쏟아지는 스콜을 바라보며 ‘까페 쓰다’를 마시고 있자니 다들 한마디씩 한다. '쓰다 더니 달구만. 히히‘ 이런 시시한 농담을 하면서 생산량이 세계 3위라는 베트남 커피와 연유의 향긋한 만남을 즐기고 있었는데 갑자기 비소리를 뚫고 병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쨍그랑“ 맞은 편에 있는 식당에서 베트남인과 외국인 남자사이에 싸움이 붙은 것이었다. 우리가 있던 까페 종업원이 신이 나서 우산을 쓰고 구경하러 달려 나간다. 불구경, 싸움구경이 재미있다고 하더니 나는 겁만 나는데 신랑들은 그걸 구경하겠다고 난리다. 병을 깬다는 얘기는 들어봤어도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다. 분위기는 점점 험악해지는데 우산 쓰고 나간 종업원은 뭐가 신나는지 입이 귀에 걸려있다. 식당 손님들이 뛰쳐나오고 공안을 부르러 뛰어가고 난리가 났다.
얼른 신랑들을 데리고 호텔로 돌아왔는데 끝까지 구경하고 싶었는지 표정에 불만이 묻어난다. 호텔 주인분에게 얘기했더니 베트남 사람들하고는 절대 싸우면 안된다고 하신다. 아줌마들도 오토바이에 연장(?)을 소지하고 다닐 정도란다. 베트남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미안하다. 은혜는 못 갚아도 원수는 꼭 갚는다“라는 말이라니 평소에는 순박해도 화가 나면 끈질기고 모진 구석이 있는 모양이다. 그러니 강대국 미국이 패망한 유일한 전쟁이 베트남전이라지 않는가.

다시 방에 왔다. 베트남에서의 첫날을 보낸 밤이라서 그런지 눈에 익고 편하다. 오토바이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