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나는 배낭을 꾸리면서 또 다퉜다. 아내는 옷가지를 자꾸만 집어넣었고 나는 자꾸만 빼냈다. 여권, 항공권, 도착 첫날밤의 호텔 예약표를 챙겨 넣고 스페인행 비행기에 올랐다. 스페인의 최남단 알헤시라스까지 버스로 가서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탄저(탕헤르)로 향하는 페리를 탔다. 출항도 하기 전에 이글거리는 아프리카의 태양이 배의 선두 쪽으로 내리쬐었다.

 선실은 마치 아랍 시장 같았다.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서 떠들며 담소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가 편히 쉴만한 곳이 없었다. 2층으로 올라갔으나 마찬가지. 모로코 최대의 명절을 맞아 우리의 추석이나 설 명절처럼 명절 대이동 중이었다. 상갑판으로 올라갔다. 이곳은 커피를 사 마시면 이용할 수 있는 라운지여서인지 유럽인들 몇 명만이 커피 잔을 앞에 놓고 불타는 아프리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브롤터 해협의 거친 파도를 타고 배는 아프리카를 향하여 미끄러져 갔다. 배의 후미로 멀어져가는 유럽대륙을 배경으로 휘날리는 붉은 색 모로코 왕국의 깃발 옆에는 청년 세 명이 캔 맥주를 홀짝이며 웃고 즐기고 있었다. 우리가 다가가서 한국인임을 밝히자 선뜻 얘기를 받아주며 맥주까지 권했다. 이들은 우리가 만난 최초의 모르코인들로 프랑스에서 유학중이며 명절을 맞아 귀향하는 명문가 출신의 청년들이었다. 나는 일본이 이나라를 통치하던 시절 명문가의 자제만이 일본 유학이 가능했다. 이들과 얘기를 하면서 부관페리를 타고 현해탄을 건너던 일본 유학생 생각이 났다. 모로코의 명문가의 자제만이 유럽 유학이 가능하단다.

 모로코는 엄격한 이슬람 국가여서 타 종교를 선교하다가 발각되면 그 자리에서 처형당한다는 것. 1912년부터 44년 동안 프랑스 식민통치를 겪었고 월드컵 3회 진출이 국가적인 긍지라는 것. 한일 월드컵을 통하여 한국을 알게 되었다는 것 등으로 얘기가 깊어지니 멀리 항구가 보였다. 지브롤터 해협은 16km에 불과하지만 거친 파도 때문에 3시간 반이나 걸렸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터미널 밖으로 나서자 아프리카의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먼저 물장수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온갖 종류의 반짝이는 구리 그릇을 몸에 매달고 손님이 지정해 주는 그릇으로 마실 물을 파는 것이다. 우리는 목은 말랐지만 물 마실 생각이 없어져 그 자리를 떴지만 곧 이어 어린이들이 새까맣게 달려들었다. 

‘껌, 씨가래, 예스, 오케이…'

 낯익은 모습이었다. 벗은 몸, 깡마른 몸매, 눈빛, 외국인을 만나면 달려가 손을 내밀며 외쳤던 그 낯익은 말들,

‘껌, 씨가래, 예스, 오케이…'

 껌도 담배도 없는 우리는 커피를 마실 때 받아 두었던 동전을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나는 아내를 재촉하여 그 자리를 떴다. 나는 나의 과거로부터 황급히 도망치고 싶었다. 아마도 고이 자란 아내는 재촉하는 나의 이런 마을을 모를 것이었다.  

  ‘수속 대신해 드립니다.'라는 글귀가 적힌 팻말을 목에 걸고 손님을 찾아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문맹률이 70%나 되니 간단한 이름을 써넣는 일조차 남의 힘을 빌어야 해서 생긴 업종이었다. 버스 차창으로 상인들이 기념품을 사라고 들이 밀었다.

 수도 라바트까지는 250km, 탄저를 출발하여 CTM 버스로 정확하게 3시간 20분이 걸렸다. 메마른 대지를 달려 라바트에 도착하자 우리는 먼저 카스바 우디야로 갔다. 대중가요 ‘카스바의 여인’으로 우리 귀에 익은 ‘카스바’는 성채(城砦)를 의미한다. 중세의 대표적인 우디야는 대서양과 라바트 시내를 배경으로 신비로웠다. 국왕 모하메드 6세의 부친 핫산 2세가 잠들어 있는 광장과 사원, 신시가의 유럽인 거리, 정부청사, 라바트대학을 둘러보니 라바트는 이슬람 문화와 현대가 어우러진 아름답고 조용한 도시였다.

 아침 일찍 서둘러 100km, 1시간 30분을 달려 카사블랑카에 도착했다. '하얀 집'을 뜻하는 카사블랑카는 영화에서와는 달리 풀밭이보여 주는 푸르름으로 풍요로워 보였다.

 우리는 먼저 도시 전체를 본 후 영화의 소재가 된 하얏트호텔로 가기로 했다. 카사블랑카에도 모하메드 5세의 왕궁이 있어서 먼저 들러보았다. 정교한 수실로 짠 정복을 입은 왕궁정문의 근위병은 우리가 다가가서 사진을 찍어도 눈동자도 돌리지 않았다. 메디나 광장을 지나서 아프리카 최대 규모인 핫산 2세의 모스크는 크기로 세계 3위, 3만 명이 동시에 예배를 볼 수 있단다. 모하메드 5세 광장을 거쳐 해변으로 나서니 마치 유럽의 어느 해변을 온 것 같았다. 그래서 이곳이 ‘유럽인의 휴양지’라고 불리는 가보다. 조금 떨어진 아랍 마을과는 딴 세상이었다.

 골목에서 찾아낸 작은 여관에 방을 정하고 짐을 맡긴 후 베르베르인의 전통음식 '꾸스꾸스'로 저녁을 먹었다. 이제 영화 '카사블랑카'의 배경이 된 하얏트 호텔로 향하면 이번 여행의 일차 목표 달성. 이런 날 골목 여관에서 잔다는 것은 아무리 주머니가 얇아도 좀 그랬다. 그 영화 속의 릭스 카페가 하얏트 호텔에 묵었으면....... 

 하얏트 호텔의 1층 '릭스 카페'에는 피아노가 연주되고 있었고 담배연기로 자욱했다. 한참을 입구에서 기다린 후에야 안내를 받아 앉을 수가 있었다.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먼의 사진이 바로 앞에 걸려 있었다. 카페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미국인들로 영화 속의 환상을 찾아온 우리와 같은 여행자들이었다.

 맥주를 주문해서 천천히 음미하며 피아노 연주를 들었다. 한참을 시간을 보낸 후에야 우리는 특징 없는 한 호텔의 카페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서로가 공감했다. 이정도의 호텔 카페야 부산에만 해도 수없이 많지 않은가. 한편의 영화를 본 후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여기까지 왔지만 막상 와서 보니 실망이 크다.

 모든 여행이 그러하지 않았던가. 여행의 목적지에 도착해서 실망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인생에서 목적을 이뤘을 때도 실망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피아노 연주와 담배 연기 속의 ‘카사블랑카’에서 우리는 현실로 향하여 떠나야만 했다.

모든 여행의 목적지는 출발지인 가정이다.

 아내와 나는 영화 ‘카사블랑카’를 몇 번이고 보았다. 주인공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먼의 열연은 우리부부의 과거를 흑백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아니다 사실은 우연히 보게 된 영화 ‘카사블랑카’에서 과거의 우리 자신을 발견하고 카사블랑카라는 현실적인 지명 속에 투영시켜 북부아프리카 여행을 하고 싶은 것인지도 몰랐다. 게다가 카사블랑카에 가면 현존하는 중세의 미로(迷路)도시 파즈도 가 볼 수가 있다.

 아내와 나는 배낭을 꾸리면서 또 다퉜다. 아내는 옷가지를 자꾸만 집어넣었고 나는 자꾸만 빼냈다. 여권, 항공권, 도착 첫날밤의 호텔 예약표를 챙겨 넣고 스페인행 비행기에 올랐다. 스페인의 최남단 알헤시라스까지 버스로 가서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탄저(탕헤르)로 향하는 페리를 탔다. 출항도 하기 전에 이글거리는 아프리카의 태양이 배의 선두 쪽으로 내리쬐었다.

 선실은 마치 아랍 시장 같았다.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서 떠들며 담소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가 편히 쉴만한 곳이 없었다. 2층으로 올라갔으나 마찬가지. 모로코 최대의 명절을 맞아 우리의 추석이나 설 명절처럼 명절 대이동 중이었다. 상갑판으로 올라갔다. 이곳은 커피를 사 마시면 이용할 수 있는 라운지여서인지 유럽인들 몇 명만이 커피 잔을 앞에 놓고 불타는 아프리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브롤터 해협의 거친 파도를 타고 배는 아프리카를 향하여 미끄러져 갔다. 배의 후미로 멀어져가는 유럽대륙을 배경으로 휘날리는 붉은 색 모로코 왕국의 깃발 옆에는 청년 세 명이 캔 맥주를 홀짝이며 웃고 즐기고 있었다. 우리가 다가가서 한국인임을 밝히자 선뜻 얘기를 받아주며 맥주까지 권했다. 이들은 우리가 만난 최초의 모르코인들로 프랑스에서 유학중이며 명절을 맞아 귀향하는 명문가 출신의 청년들이었다. 나는 일본이 이나라를 통치하던 시절 명문가의 자제만이 일본 유학이 가능했다. 이들과 얘기를 하면서 부관페리를 타고 현해탄을 건너던 일본 유학생 생각이 났다. 모로코의 명문가의 자제만이 유럽 유학이 가능하단다.

 모로코는 엄격한 이슬람 국가여서 타 종교를 선교하다가 발각되면 그 자리에서 처형당한다는 것. 1912년부터 44년 동안 프랑스 식민통치를 겪었고 월드컵 3회 진출이 국가적인 긍지라는 것. 한일 월드컵을 통하여 한국을 알게 되었다는 것 등으로 얘기가 깊어지니 멀리 항구가 보였다. 지브롤터 해협은 16km에 불과하지만 거친 파도 때문에 3시간 반이나 걸렸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터미널 밖으로 나서자 아프리카의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먼저 물장수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온갖 종류의 반짝이는 구리 그릇을 몸에 매달고 손님이 지정해 주는 그릇으로 마실 물을 파는 것이다. 우리는 목은 말랐지만 물 마실 생각이 없어져 그 자리를 떴지만 곧 이어 어린이들이 새까맣게 달려들었다. 

‘껌, 씨가래, 예스, 오케이…'

 낯익은 모습이었다. 벗은 몸, 깡마른 몸매, 눈빛, 외국인을 만나면 달려가 손을 내밀며 외쳤던 그 낯익은 말들,

‘껌, 씨가래, 예스, 오케이…'

 껌도 담배도 없는 우리는 커피를 마실 때 받아 두었던 동전을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나는 아내를 재촉하여 그 자리를 떴다. 나는 나의 과거로부터 황급히 도망치고 싶었다. 아마도 고이 자란 아내는 재촉하는 나의 이런 마을을 모를 것이었다.  

  ‘수속 대신해 드립니다.'라는 글귀가 적힌 팻말을 목에 걸고 손님을 찾아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문맹률이 70%나 되니 간단한 이름을 써넣는 일조차 남의 힘을 빌어야 해서 생긴 업종이었다. 버스 차창으로 상인들이 기념품을 사라고 들이 밀었다.

 수도 라바트까지는 250km, 탄저를 출발하여 CTM 버스로 정확하게 3시간 20분이 걸렸다. 메마른 대지를 달려 라바트에 도착하자 우리는 먼저 카스바 우디야로 갔다. 대중가요 ‘카스바의 여인’으로 우리 귀에 익은 ‘카스바’는 성채(城砦)를 의미한다. 중세의 대표적인 우디야는 대서양과 라바트 시내를 배경으로 신비로웠다. 국왕 모하메드 6세의 부친 핫산 2세가 잠들어 있는 광장과 사원, 신시가의 유럽인 거리, 정부청사, 라바트대학을 둘러보니 라바트는 이슬람 문화와 현대가 어우러진 아름답고 조용한 도시였다.

 아침 일찍 서둘러 100km, 1시간 30분을 달려 카사블랑카에 도착했다. '하얀 집'을 뜻하는 카사블랑카는 영화에서와는 달리 풀밭이보여 주는 푸르름으로 풍요로워 보였다.

 우리는 먼저 도시 전체를 본 후 영화의 소재가 된 하얏트호텔로 가기로 했다. 카사블랑카에도 모하메드 5세의 왕궁이 있어서 먼저 들러보았다. 정교한 수실로 짠 정복을 입은 왕궁정문의 근위병은 우리가 다가가서 사진을 찍어도 눈동자도 돌리지 않았다. 메디나 광장을 지나서 아프리카 최대 규모인 핫산 2세의 모스크는 크기로 세계 3위, 3만 명이 동시에 예배를 볼 수 있단다. 모하메드 5세 광장을 거쳐 해변으로 나서니 마치 유럽의 어느 해변을 온 것 같았다. 그래서 이곳이 ‘유럽인의 휴양지’라고 불리는 가보다. 조금 떨어진 아랍 마을과는 딴 세상이었다.

 골목에서 찾아낸 작은 여관에 방을 정하고 짐을 맡긴 후 베르베르인의 전통음식 '꾸스꾸스'로 저녁을 먹었다. 이제 영화 '카사블랑카'의 배경이 된 하얏트 호텔로 향하면 이번 여행의 일차 목표 달성. 이런 날 골목 여관에서 잔다는 것은 아무리 주머니가 얇아도 좀 그랬다. 그 영화 속의 릭스 카페가 하얏트 호텔에 묵었으면....... 

 하얏트 호텔의 1층 '릭스 카페'에는 피아노가 연주되고 있었고 담배연기로 자욱했다. 한참을 입구에서 기다린 후에야 안내를 받아 앉을 수가 있었다.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먼의 사진이 바로 앞에 걸려 있었다. 카페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미국인들로 영화 속의 환상을 찾아온 우리와 같은 여행자들이었다.

 맥주를 주문해서 천천히 음미하며 피아노 연주를 들었다. 한참을 시간을 보낸 후에야 우리는 특징 없는 한 호텔의 카페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서로가 공감했다. 이정도의 호텔 카페야 부산에만 해도 수없이 많지 않은가. 한편의 영화를 본 후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여기까지 왔지만 막상 와서 보니 실망이 크다.

 모든 여행이 그러하지 않았던가. 여행의 목적지에 도착해서 실망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인생에서 목적을 이뤘을 때도 실망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피아노 연주와 담배 연기 속의 ‘카사블랑카’에서 우리는 현실로 향하여 떠나야만 했다.

모든 여행의 목적지는 출발지인 가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