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바스

중동여행 3 - 시리아 팔미라

김현숙 2009-05-28 (목) 15:40 조회:889

아침 08시30분 1인당 100시리안파운드를 주고 팔미라행 버스를 탄다. 출발전
모두 분주하게 이리 저리 뛰어 물, 빵, 과자 등을 사서 식량을 축적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각자 자리에 앉는다. 드디어 본격적인 시리아 여행을 하게된것인가?

버스가 조금 달리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꺾을 즈음 뒷 좌석에서 한 남자가 튀어
나오며 뭐라고 소리를 지른다. 사람들 시선은 그에게 꽂히고 버스기사와 조수와
그 남자 쌸라쌸라 빠른 속도로 말을 서로 주고 받더니 버스의 방향이 또 갑자기
바뀐다. 영문을 몰라하는데 알고본 즉선 이 버스 기사가 팔미라 가는 길을 정확히
몰랐던 것이다.
가는 도중 내내 이 남자손님의 감시를 받으며 운전을 하는 버스기사가 너무
웃긴다. 도대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이젠 우리도 혹시나 이 기사가 엉뚱한 방향으로 차를 몰까싶어 길도 모르면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길가 이정표가 있나 살피며 같이 감시를 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이런 상황이 그저 재밌고 즐겁기만 하다.

3시간 여를 달렸을까 저 멀리 황량한 사막 위 오아시스도시 팔미라가 한눈에
들어오고 모래색깔과 똑 같은 건물들이 또 눈에 들어오니 갑자기 재미가 없어
지려는데 차에서 내려 사방을 쭉 둘러보니 그래도 뭔가가 숨어서 우리를 반겨
줄것 같은 기대가 생긴다.

저 멀리 모래산 위에 아랍성이 우뚝 서있고 팔미라 유적지가 여기저기
내팽겨져진 듯 흩어져 있다. 언뜻 보아도 그 옛날 저 건축물들을 세웠을 때는
정말 거대하고 거창하고 매우 아름다웠을 것이라 짐작이 된다.

조용한 마을 분위기, 혼자 왔으면 정말 멋진 나그네가 되어 쓸쓸한 발걸음으로
한껏 폼 잡으며 상상의 영화를 찍었음직한 고즈넉한 곳이다.
감상은 뒤로 미루고 각자 흩어져 오늘 머물 호텔을 흥정하고 가장 싸고 깨끗한
곳을 정하여 짐을 내린다.

바람이 몹시 부는 길거리, 방한 장비를 갖추고 아까 보았던 아랍성을 향해
가는데 아고 신발을 잘못 신고 나왔구나 산 중턱에서 아쉽지만 걸음을 멈추고
줌을 사용하여 아랍성의 위용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리고는 혼자서 뒤돌아
반대방향에 있는 유적지로 걸음을 옮긴다.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석조기둥들, 흩어져 있는 듯 하면서도 질서 정연하게
나란한 기둥들, 처음 도착했을 때의 기분처럼 인적 없는 이곳, 넓은 유적지
사이를 혼자 거닐어본다. 너무 조용하다. 잠시 이 유적들을 건축한 유령들이
내 주위에서 나를 지켜보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무섭진 않다. 혼자 실성한
것처럼 실실 웃으며 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경건한 자세로 거닐어본다.

메마른 땅 사이사이 삐죽이 내어민 보일듯 말듯한 풀을 뜯어먹으며 한 무리의
양떼가 저기 보인다. 멀리서 보면 흙을 먹고 있는듯이 보이지만 가까이 가니
분명 풀을 뜯어먹고 있는 모습이다. 베두윈 족 아저씨와 그 아이들인가 보다.
참 평화롭다. 양 떼를 지켜보고 있는 그들의 모습과 주인 근처에서 무심히 풀을
뜯고 양들이 있는 광경은 한 폭의 평화스런 그림으로 비추어진다.

너무 넓은 곳이라 저쪽 길가로 내려가는 길이 어딘지 모르겠다. 길은 분명
보이는데 내가 너무 깊숙히 들어왔나? 여기 저기 어딜 가도 높은 축대처럼
되어있어 내 짧은 다리로는 도저히 내려가질 못하겠다.

팔미라 유적지, 내 옆에 서 있는 유령이 보이는가? ㅋ

그 때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난 한 베두윈 청년이 저쪽에 좀 낮은 곳이 있으니
그쪽으로 내려오란다. 고맙다며 몇발자국 울퉁불퉁 돌위를 옮기는 순간 아쿠!
발목이 삐걱하며 보기좋게 온몸을 돌빡들 위로 때기장을 친다. 저만치서 길을
가르쳐주고 발길을 돌리려던 청년, 놀라서 달려온다.

높은 언덕위를 이리저리 잘도 타고 올라와서 매우 걱정스런 모습으로 괜찮냐며
내려다보는데 그 때의 내 자세는 내가 생각해도 너무 웃긴다. 넘어지는 순간
비싼 디카를 보호하기 위해 두손으로 카메라만 감싸고 내 몸은 돌팍사이에
희안하게 구겨져 누워있었다.

이놈의 카메라, 예전에는 덴마크 코펜하겐 대로변에서 넘어지면서도 이놈을
보호하기 위해 넘어지는 순간 한 손으로 이놈을 높이 치켜들고 한 손으로 땅을
짚으며 몸을 지탱하는 바람에 손바닥 세군데가 찢어져 피가 철철 난 적이
있었는데.. 에고 이 애물단지.

그 청년이 내민 손을 잡고 일어서서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니 다행히 부러진
데는 없나보다. 잠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오메 부끄러운 거.
그래도 고맙다는 인사는 해야지. 마침 주머니 속에 있던 한국사탕 몇개를 내밀며
슈크란을 한 열번쯤 내뱉으니 오히려 그 청년이 더 민망해한다. 오! 순박한
그 모습. 어쨌든 고맙수 총각, 복 받게나.

넓은 길에서 윤선생을 만났다. 시리아를 비롯 이집트 등지에서는 학생증이
매우 유용한데 학생과 일반인의 요금이 다르고, 외국인의 유명 관광지 또는
유적지, 박물관 등의 입장료가 엄청난 차이가 나므로 여기에 같이 오게 된
모두의 가짜 학생증 8개를 만들기로 하고 전문으로 가짜 학생증을 만드는 곳을
찾아갔는데 마침 전문가(?)는 다마스커스로 볼일 보러가고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그 형을 만났다.

필요한 재료는 줄테니 스스로 만들라고 했다. 남자의 투박한 솜씨가 세밀
하게 위조가 필요한 학생증을 만들기에는 힘든 일이라 솜씨 좋을것같은 내게
부탁한다. 만드는 것이야 할 수 있지만 불법이란 사실이 좀 께름칙하다. 그러나
외국인이라 하여 내국인의 입장료보다 10배나 더 받는다.
우린 차가운 얼음물에 샤워하고 밤새 오돌돌 떨며 자는 가난한 나그네들,
그렇다면? 음!!

만들어보기로 한다. 식당내에 있는 비밀아지트에 들어가니 서양 아가씨 네 명이
이미 이 불법 범죄에 가담하고 있었다. 서로 마주 보며 슬쩍 민망하고도 겸연쩍은
웃음을 나눈다. 나도 민감한 손 끝으로 8명의 가짜 학생증을 세심하게 만든다. 무려 세시간이 걸려 완성했다. 만들고 보니 그럴듯 하긴 한데 온 몸이 뻑적찌끈한게 몹시 피곤하다.

식당주인에게 돈은 당신이 다 받고 일은 나한테 다 시켰으니 뭔가 댓가를
달라고 했더니 인건비는 줄 수 없고 대신 우리 일행이 식사할 때 많은 서비스를
해주겠단다.

저녁식사, 시리아의 전통 메뉴였는데 이름은 모르겠지만 무척이나 맛있었다.
모두 게눈 감추듯 엄청 맛나게 먹었다. 서로 곁눈질로 견제를 해가며 내 노동의
댓가로 얻은 얼반 공짜 밥을 순식간에 해치웠다.
이들은 알까? 나의 양심 찔리는 봉사활동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