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매우 춥다. 입김이 훅훅 나온다. 아침일찍 미니버스로 크락데 슈발리에라는

십자군 성이 있는 마을로 간다. 차를 바꿔타야 하는 마을 대로변에 내려 한데 마음을

모아본다. 저 멀리 아득하게 십자군 성이 보이나 걸어가기에는 꽤 먼 거리인듯, 그러나

우리는 배낭여행자의 본분을 십분 살려 성까지 걸어가기로 한다.

가는 도중 띄엄 띄엄 흩어져 있는 촌가를 혹시 둘러볼 기회도 있지않을까? 한참을 걸어가고

있는데 어느 집 2층 난간에 아이들 7-8명이 우리를 먼저 발견하고 신기한 듯 쳐다본다. 약속이나

한 듯이 우리 모두는 손을 흔들며 아이들에게 환한 웃음을 보낸다. 아이들의 어머니 한 사람이

 마당으로 나와 우리에게 집으로 들어오라는 손짓을 보낸다. 당연히 발길을 그 집 안으로

옮겼다. 아이들에게 둘러싸였다. 말똥말똥 쳐다보는 그 눈동자들이 너무 예뻐 아이들의

손을 흔들고 잡아주니 아이들은 금방 천진한 웃음을 띄며 마음을 연다. 잠시 사진을 찍고

있는 사이 온 동네 아이들이 다 모였다. 어머니들도 모였다. 마치 무슨 비상연락망이라도

있는 듯하다.

 우는 아이 하나를 한국 사탕으로 달래니 금방 울음을 뚝 그치고 품에 안긴다. 씻지않아

때가 꼬질꼬질 묻어 얼굴과 손이 때로 얼룩이 져 있지만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깨끗한

아이같다. 순수한 눈망울이 예쁘기 그지 없어 꼭 안고 얼굴을 부비니 그렇게 보드랍고

예쁠 수가 없다.

한국 기념품을 나눠주고 아쉽게 발길을 돌려 다시 조금을 가니 자동차 수리상앞에

몇몇의 남자들과 아이들이 있다. 또 인사를 건넨다. 남한에서 왔다하니 미국에 대한

적개심을 잠시 이야기 하였으나 우리에게 적개심을 표하지는 않는다. 이들 역시 평화

를 사랑하는 평범한 한 나라의 국민이며 손님에게 최대의 예의를 표할 줄 아는 순수한

사람들이었다.

 집 안에서 넉넉하게 생긴 아주머니 한 사람이 나와 화들짝 반가운 표정으로 반기더니

이내 그들의 전통 커피를 대접해준다. 아무런 사심없이 말이다. 또 동네 아이들이 다

모여 우리를 에워싸고 빤히 쳐다본다. 그 중 한 아이의 남대문이 열려있어 우리말로

"남대문이 열렸네"하며 손으로 가리키니 금새 얼굴이 새빨개지면서 부끄러워 한다.

앗차! 실수를 했구나. 미안한 마음에 손을 잡고 살짝 안아주니 가만히 안긴다. 너무너무

예쁜 아이들, 너무너무 착한 어른들, 너무너무 평화로운 마을, 시간만 허락된다면 여기서

하루만, 딱 하루만이라도 묵고싶다.

 나는 시리아 한 시골마을에서 우연히도 천사들을 만났다. 나중에 꼭 다시 오리라.

그때는 이들이 얼마나 변해 있을지 모르겠으나 오늘의 이 느낌이 너무도 소중하여

변할 것을 예상하고서라도 다시 꼭 찾아오리라 다짐한다.

15분이면 갈 수 있는 십자군 성까지 무려 2시간에 걸쳐 산길을 걸어서 도착했다.

 마을에서 만난 천사들땜에 오늘의 목적이었던 십자군성은 오히려 심드렁하다. 하지만

가짜 학생증의 효력을 여기서도 십분 발휘하여 입성, 세세히 둘러본다. 허물어지고 깨어

지고 옛모습을 많이 잃은 성의 상태가 심히 안타깝다.

 성의 오른편 언덕위에 있는 여행책자에도 나와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식당

주인이 책에 안내된대로 참 특이하다. 마치 트랜스젠더같은 인상을 풍긴다. 남자임에도

눈썹을 곱게 밀어 멋을 내고 말씨, 행동도 어중간한 여자 남자다. 몸은 우람한데 하는

폼이 애교가 철철 넘친다.

 여행책자를 보여주며 당신 식당이 여기 있고 당신에 대한 얘기도 여기 있다며 보여주니

"정말?"하며 반색을 한다. 그 뒤 우리의 점심식탁은 상다리가 부러진다는 우리식 표현이

딱 들어맞게 풍성했다.

 시리아는 나라 자체가 아름다운건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너무 아름답다. 몰론 대도시

에는 껄떡쇠도 있고 바가지전문 꾼들도 있지만 그들을 제외 하면 모든 사람들이 정직하고

친절하고 다정하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다 먼저 인사를 건네면 어김없이 다정한

손짓과 눈빛과 마음이 되돌아 온다.

 하마로 돌아온 뒤 시내에 있는 모스크와 이 도시의 상징인 수차를 돌아 보고 영화 속에

서나 봄직한 너무나 아름다운 노을을 배경으로 낭만이 잔뜩 스며든 가슴을 안고 숙소로

돌아왔다. 내일이 다시 기대된다.

하마시의 석양, 이 아름다운 석양 아래서 여행자의 낭만을 즐기며

길위의 방랑자임을 너무 행복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