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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례 2025-11-06 (목) 13:44 조회:26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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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브장송 여행 나의 이번 프랑스 한 달 여행(9/22~10/22일)은 디종에서의 6박 7일 서바스 국제행사를 포함한 것이었다. * 참고로 서바스 (Servas)는 유네스코 산하 세계 평화를 지향하며 서로 호스트를 주고받는 국제 여행단체다. 이번 행사에는 45개국에서 185명 참가했고 첫날 환영 행사에서 디종 부시장이 오셔서 각국에서 온 여행자들을 맞이해주셨다. 우리 부부는 이번 디종에서의 총회가 처음 가는 서바스 국제총회였다. 둘 다 은퇴를 하고나서 이제부터는 자유롭기에 참가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첫 참가하는 총회가 프랑스에서 열려서 더욱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 프랑스는 내가 20대에 5년을 살아본 나라여서 뜻 깊었고 이번에 총회를 겸한 한 달 여행을 하면서 프랑스 가정 6군데 호스트를 받아 가정마다 환대와 다양한 면모를 보고 배울 수 있어 더욱 서바스를 통한 여행과 교류에 대한 가치와 진정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 파리에서 6일은 자유롭게 호텔에 숙박하면서 이전에도 몇 차례 갔던 주요 명소를 다시 가 보며 파리의 가을을 만끽했다. 그리고 총회를 앞두고 며칠은 디종 가까운 브장송에서 두 가정의 호스트를 받았다. 브장송(Besançon)은 프랑스 동부, 부르고뉴-프랑슈콩테(Bourgogne-Franche-Comté) 주의 주도이자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도시다. 인구는 약 12만인데 광역 도시권까지 합치면 25만 명 이상으로, 프랑스 동부, 스위스 국경 가까이, 두(Doubs) 강이 크게 굽이치는 곳에 자리한 아름다운 곳이다. 르네상스풍 건축, 바위 절벽에 둘러싸인 성곽으로 로마와 중세 유적이 조화롭게 공존하고 강과 주변 구릉이 어우러져 도시 경관이 매우 아름답고, ‘프랑스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중 하나’로 자주 꼽힌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바다가 가장 먼 도시라는 특징이 있다. 두 강을 따라 길게 늘어선 건물과 교회, 광장모습 브장송 시내 투어와 빅토르 위고의 흔적 처음 간 베티와 다비드집은 브장송 시내에 위치해있어 가방을 맡기자 마자 시내투어를 했다. 이전에 휘리릭 다녀간 빅토르 위고 생가를 이번에는 꼼꼼히 보며 그의 작품과 남긴 어록들, 일생등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브장송이 스위스 가까운 지역이어서 역시 시계산업이 발달했고 국립시계박물관(Musée du Temps)이 있었는데 무척 흥미로웠다. 대문호일뿐 아니라 정치, 사상가로서 인류애와 박애정신을 전 세계에 떨친 빅토르 위고 《레 미제라블》과 《노트르담 드 파리》의 작가인 빅토르 위고는 1802년 브장송에서 출생했다. 남편은 딱 65세라 빅토르위고 박물관과 시계박물관 미술 박물관까지 세 뮤지엄패쓰 65세 이상 할인을 받고 표를 끊었다. 세상에 빅토르 위고의 이름을 딴 곳은 박물관, 거주지, 그리고 작가가 방문한 곳들까지셀 수 없이 많다. 그러나 그의 고향인 브장송은 무엇보다도 "자유의 증진"과 "인간의 고통에 맞서" 싸운 이 헌신적인 인물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었다. 1880년 브장송 시민들에게 보낸 유일한 편지에서 빅토르 위고는 자신을 "인류가 걸어가는 길 위의 작은 돌멩이"로 묘사했다. 작가이자 정치인, 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로서 그의 투쟁은 오늘날에도 수많은 의미를 지니며 여전히 유효하다. "생각은 권리 그 이상입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숨결입니다. 생각을 방해하는 자는 인간 자신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빅토르 위고, 1862년) 국립 시계박물관은 그랑벨 궁전을 활용하고 있었다. 브장송은 16세기에도 프랑스 황제가 아닌 그의 대리인에 의해 통치되었는데, 샤를 5세의 대리인이었던 그랑벨은 1533년에서 1542년 사이에 궁전을 건축했다. 도시 중심부에 위치한 궁전의 화려함은 16세기 전반 유럽에서 이 위대한 정치가의 정치적 중요성을 보여준다. 호화로운 건축물안에 그들이 수집한 예술 작품, 메달, 원고 등 놀라운 컬렉션이 보관되어 있었다. 나는 수 많은 크고 작은 시계와 시계 만드는 작업, 부품, 기계들을 둘러보며 과연 시간은 무엇인가? 라는 철학적인 질문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원래 시간이라는 것은 없고 존재하지 않는다, 였다. 시간은 다만 우리 편리를 위해서 만들어진 개념일 뿐이다. 그런 시간을 동양에서는 순환적인 원의 개념으로 표현하고 서양에서는 ‘과거 현재 미래’의 직선 개념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아인슈타인과 현대 물리학자들도 시간은 그 자체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미 확증했다. 스위스과 국경지대인 브장송에는 시계산업이 발달했다. 베티와 다비드 부부의 정감 있는 가정 * 처음 호스트 요청 멜을 보내면서 구글에서 찾아보니 베티집이 이렇게 페인팅 되어있어서 찾기 어렵진 않겠다 싶었다. 가서 보니 이 일 층을 남편의 작업실로 사용하는데 예술적으로 페인팅을 해 놓았던 거 같다. 브장송에서 이번 여행에서 나의 첫 번째 호스트인 베티와 다비드 부부를 만났다. 아마도 이 백년은 된 듯한 오래된 그들의 집에 묶게된 것은 정말 색다른 경험이었다. 역으로 마중나와서 우리 부부의 큰 짐가방을 본 베티는 처음부터 우려를 했다. 그러더니 집에 도착하자 조심스럽게 1층 남편의 작업실에 큰 가방은 두고 작은 가방만 들고 올라가는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우리는 그렇게 했고 좁디좁은 나선형 계단을 따라 올라가 4층의 게스트룸에 이르면서 그녀의 우려섞인 제안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프랑스의 오래된 건물엔 당연히 승강기가 없다. 그녀는 쌍둥이를 4층 침실까지 양옆으로 안고 오르며 키울 때는 몹시 힘들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2층은 거실이었고 3층은 부부의 침실, 그리고 4층에 아들, 딸이 사용하다 지금은 비어 있는 침실 두 개가 있었다. 다락방에는 책과 악기로 가득 차있고 옥상에선 멀리 시타델 요새가 보이는 뷰를 가진 집 베티는 연극배우를 하다가 지금은 연극을 가르치는 교사로 지내며 마침 내가 가는 날 스페인어 배우는 강의가 처음 시작되는 날이어서 우리 부부를 내려놓고 급히 나갔다. 대신 남편인 다비드가 우리를 맞아 음료수를 내어주며 인사를 나눴다. 남편은 그녀보다 9살 연하였고 지금은 연극무대 장식 담당을 하고 있는데 이전엔 목수일을 했다고 했다. 우리나라나 어디나 대체로 연극계통의 일은 수입이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 추측처럼 집은 오래되고 소박하였지만 예술하는 이들의 아나로그적 삶과 가치, 미가 녹아든 모습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유롭고 열린 대화가 우리가 있는 곳을 내 집처럼 편안하게 느끼게 해 주었다. 이튿날 점심도 차려주겠다는 베티에게 우리 부부가 초대한다며 시내에 다비드 추천한 식당에서 프랑스 코스요리로 먹었는데 합리적 가격으로 4인이 18만원정도 나왔는데 분위기도 좋고 맛도 좋았기에 가성비가 짱이었다. 그녀의 남편 다비드가 추천한 레스토랑, 마지막 커피까지 가성비가 좋았다. 올리비에 가족과의 K-푸드 교류 브장송 시내 투어를 충분히 하고 그 다음날 우리는 시내에서 좀 떨어진 올리비에 집으로 갔다. 올리비에는 메일로 호스트요청을 했을 때 둘째딸 클로이가 한국에 대해서 너무 관심이 많아서 리용에서 와서 우릴 같이 마중 나갈 것이라 했는데 진짜로 베티집으로 딸과 함께 우리를 데리러왔다. 올리비에집은 전원주택이었고 집 가까이에 숲이 있어 공기가 맑고 조용하여 지리산 우리 시골집이 생각나는 그런 곳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올리비에는 이벤트 플래너로서 재택근무를 하는데 20년 전에 폐가를 사서 이렇게 모던하게 개조를 했다고 한다. 벽면에 세계 지도와 거실에 당구대도 있는 집은 아주 현대적이고 젊은 감각으로 잘 꾸며져 있고 세 딸은 각각 리용과 브장송대학에서 일하며 공부하고 있었다. 그는 재택 근무의 장점은 출퇴근이 없는 대신 자다 가도 벌떡 일어나 지하 사무실로 내려간다며 농담처럼 결국 24시간 일한다고도 할 수 있다 했다. 그리고 상근 직원이 둘 있지만 대부분 줌 회의나 줌 미팅으로 각지의 사람들과 연결한다고 하는 걸 보니 서바스의 젊은 회원으로서 참 영리하고 부지런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세계 지도를 보면서 올리비에는 지구 상에 나라가 200개라도 일 년에 두 나라를 간다면 100년이 걸린다며 그래서 본인은 세 딸과 가족 여행으로 세계 일주를 두 차례 했다고 했다. 과연 여행가 다운 말이라 싶었다. 한 번은 8개월, 한 번은 일 년을 잡고 여행을 두 번하니 세계를 좀 돌아본 느낌이라고 했다. 나는 아직 안 가 본 대륙이 아프리카, 남미니 그의 말대로 모든 나라는 아니어도 적어도 안 가본 대륙이라도 하루빨리 밟아 봐야 할 것 같다. 첫 날은 엄마와 딸이 저녁 운동을 하러 가고 올리비에가 지역명을 딴 프랑스 유명치즈 Comté(꽁떼)와 여러종류의 Jambon(베이컨)으로 저녁을 차려주었는데 프랑스 치즈와 장봉을 좋아하는 나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프랑스식으로 데우거나 끓이지 않는 식사를 보통 le repas froid 찬 메뉴라 하는데 그렇게 먹은 셈이다. 우리 식으론 밥과 국이나 찌개가 있어야 하지만 보통 프랑스에선 데우는 거 없이 베이컨과 치즈, 야채로 먹는 경우가 많다. 와인이랑 곁들여 저녁을 먹으면서 올리비에는 벽면 가득 진열된 보드 게임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남편에게 잘 설명해 주었다. 꽁떼 치즈와 각종 베이컨으로 잘 차려진 저녁상, 그리고 이튿날 크리스텔이 한 베프부르기뇽 그래서 다음날 저녁은 우리의 쌈 사먹는 문화를 알려주기 위해 삼겹살과 돼지 두루치기를 하겠다 하니 너무 좋아했다. 막내딸과 그녀의 친구까지 온다면 7~ 8명이 될 것인데 올리비에 아내 크리스텔도 그녀의 할머니께 배운 프랑스요리를 하겠다고 해서 풍성한 식사가 예상되었다. 나는 딸 클로이와 함께 시장을 봤고 한국에서 가져온 쌈장과 참기름, 진간장, 고추장을 이용해서 제육볶음을 하고 오이 무침도 좀 메콤하게 했는데 다들 맵다 하면서도 좋아했다. 이튿날 남은 요리도 꺼내서 다시 먹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는데 레시피를 달라해서 주고 왔다. 오이 무침과 쌈 사먹는 걸 그리 좋아할 줄 몰랐다. 프랑스인은 쌈장을 보면 다 반한다. 프랑스 문화에서 경험한 소소한 충격과 성찰 그런데 프랑스와 그 문화를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나에게도 작은 문화적 충격이 있었다. 가족사진 설명을 하면서 딸이 엄마, 아빠라 소개하지 않고 올리비에와 크리스텔등 부모의 이름으로 소개하기에 의아해서 물어보니 엄마, 아빠란 말은 누구나 사용해서 어릴 적부터 부모들이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는 걸 좋아해서 허용했다 했다. 한국에선 있을 수 없고 우린 형제자매도 서열 따라 언니, 오빠라고만 한다 하니 딸들도 가끔식은 ‘엄마, 아빠’로도 부르기도 한다며 웃었다. 나에겐 작은 충격이기도 했지만 암튼 딸들과 부모의 친밀하고 자유로운 관계는 자연스럽고 보기가 좋았다. 어차피 여행은 다름을 찾아 떠나는 것이고 다름을 발견하고 접함으로써 우리 생각도 새롭게 할 기회를 가짐으로 사유를 확장해 가는 일이라 생각한다. 어쨌든 딸 클로이는블랙핑크를 좋아해서 한글도 배우고 있고 이미 내년 봄 남자친구와 한국 방문을 위해 비행기표도 사 두었기에 오면 우리집 에서도 머물다 가기로 약속했다. 어제 클로이와 WhatsApp 통화, 해외 소통은 무조건 왓챠앱이다. 우리나라 카톡처럼 문자, 통화 가능 사진 영상도 주고받는데 너무 쉽고 빠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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